Dr.박 이야기
event_available 15.04.23 10: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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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고관리자

변호사들의 출산

본문

청담동 연앤네이쳐 - 자연주의출산 - 자연출산

 

가끔 나는 돗자리 펴고 저기 보도에 앉아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무슨 소리?

가끔 보호자나 산모가 뭔가 물어보거나, 답변을 할 때 주는 느낌으로 대충의 직업을 알아 맞힐 수 있을 때가 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말이다.

 

작년 여름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양막이 먼저 열린 산모가 있었는데, 2일째까지 진통이 생기지 않자, 우리는 유도분만을 상의하기로 했다.

'양막이 먼저 터졌어요. 보통 만 하루 이내에 아기를 보게 되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진통이 있어야 겠죠... 우선 12시간까지 기다려 볼께요.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 우리 다시 고민해 봐요.'라고 우리가 통상 양수가 먼저 나오는 경우에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아기 아빠 왈 ... ' 네... 선생님이 판단하시구요... 저희는 그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어라... 조금 다르네... 싶은 마음이었으나, 어찌됐건 우리는 12시간 지나고 나서,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튼 이 산모는 결국 유도분만을 하고 거의 48시간이 다 되었던가, 지났던가 해서 아기를 낳았다. 물론 아기는 매우 건강했고 산모도 별탈 없었다.

닥터박 : ' 24시간이 지나고 있긴 하지만, 아기는 괜찮아 보이고, 산모도 괜찮아요.. 의학적인 응급은 아니니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지 않게 유도분만 해볼까 해요.'

보호자 : ' 네... 저희는 잘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아기는 괜찮다는거죠? 수술 하라면 하고, 기다리라면 기다릴께요. 저희가 판단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선생님이 판단해주세요.'

닥터박 : ' 수술의 장단점은~~~~구요... 자연분만하면 ~~~~~ 습니다. 응급도 아니고~~~~'

보호자 : ' 네... '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던 이 아기 아빠를 두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료할 때 되도록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직업을 보지 않고, 주소도 보지 않고 그냥 진료를 보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이 분의 직업이 심하게 법조계로 의심이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분은 변호사였다. 더 무서웠다. 만약 잘못되면 이러다가 진짜 소송 당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확' 지금 당장 수술하자고 하고 싶었으나 그 유혹을 간신히 참고, 아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생각할 수록 이 분들이, 아니 이 아기 아빠가 우리 병원에 온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주도 출산이라고 한다면, 저렇게까지 방어적일 필요는 없을텐데 말이다. 다행히 아기가 괜찮아서 아무 문제 없었지만... 산모는 해 맑게 웃고, 진통에 집중하고 싶은데, 남편은 시종일관 '위험'과 '방어'에 집중해서 산모의 진행을 돕지 못했던, 정말 안타까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올해 초...

같은 상황에서...양수가 먼저 나오고... 2일이 지나 출산이 되었던 산모... 이 산모는 산모 자신이 변호사였다. 나는 꿈에도 몰랐으며, 설명할 때도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가 하던데로, 방어막 없이 그대로 산모에게 설명하고, 위험, 장점, 등등을 설명들은 산모는 의료적인 '선택'과 결정'이 아닌 본인의 출산에 대한 '결정'을 했다. 모든 경우 정말 응급인 경우에는 모든 선택과 결정을 의료진이 해야하지만, 양막이 먼저 터지고, 진통이 오지 않아 애매모호한 경우는 위의 예에서처럼 제왕절개의 장단점, 기다리는 것의 장단점을 모두 알고, 의료진과 상의를 하여 최종 결정은 산모와 남편 쪽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당연하다. 그리고, 이 아기 엄마의 출산은 내가 당직이 아니었던 날 이루어졌고, 역시 모두의 바램과 희망속에서 아기는 건강하게 출산되었다. 나중에 나는 이 산모가 변호사임을 알고, 후에야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정말 위급한 상황이면 원장님도 오시고,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라는 것이다. '변호사인줄 알았으면 미리 좀 더 방어적으로 진료할 걸 그랬나봐요...^^' 라고 대답했었다.

 

같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직업과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오랜 습관으로 굳어져, 이 사람의 삶의 모습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 습관의 틀을 깨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종종 책임회피와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우리나라 문화를 볼 때마다 진료현장을 생각하곤 한다. 무엇을 하던지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후회는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모든 것이 100% 안전하고, 100% 만족일 수 있을까.... 물론 기대했던 것 이상이면 200% 만족이겠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방어적인 행태를 취하는 사람들은 상대편도 방어적으로 만든다. 진료실에서 보는 그런 사람들은 특히나 의사를 더 방어적으로 만들게 되며 오히려 본인의 진료와 건강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지나치게 방어적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의료적인 처치와 검사를 할 수 밖에 없고, 안심은 얻을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피해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의료에서는 진료실 문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괜찮으며 지금까지 괜찮다면 더욱더 괜찮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의사보다 더 의사에게 방어적인 분들을 볼 때면 그렇기에 참으로 안타깝다.

만약 위의 보호자가 조금더 산모에게 집중해 주었다면 넘쳐나는 옥시토신의 힘으로 아마 하루만에 출산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적어도 연앤네이쳐에서는 말이다. 의사, 조산사, 의료진들 모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둘의 출산이 잘 되게끔 도와주고 있다. 자연출산의 취지는 사실, 자기주도 출산에 있으며 엄마의 본능찾기와도 관련이 있다. 여자가 본능적으로 아기를 잘 낳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과정에서, 정말 이상이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로 방어적인 태도는 좀 내려 놓아야 한다. 특히나 남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진통 중인 산모에게 사랑을 주기에도 부족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 방어와 두려움으로 꽁꽁 뭉쳐 산모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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